비움과 덧댐
두 채의 목구조 주택
고당리 단독주택은 은퇴한 부부가 부모님 집 옆에 있던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지어 살 집이다. 허물어져 가던 기존 건물은 부모 세대가 60여 년 전 목재와 흙벽돌을 사용해 지은 한식 목구조 건물이었다. 20년 가까이 방치되면서 지붕과 벽의 일부가 무너져 있었다. 비록 철거 후 신축하는 일이었지만, 마당을 둘러싼 기존 건축물군의 맥락을 지금의 삶의 양태에 맞춰 번안하는 데 집중하였다.
가새골집은 보다 복잡한 역사를 지닌 건축이다. 이 집은 병원에 모신 어머니를 가까이에서 돌보기 위해 임시로 지은 건물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특정 양식이나 구법을 따랐다고 하기에는 애매했고, 거칠게 제재된 목재 기둥들이 흥미로웠다. 이후 한적한 동네를 찾아온 부부가 이 집에 매력을 느껴 사게 되었고, 지금은 자녀들과 함께 인근의 더 큰 집으로 옮겼다. 현실적 무게를 덜어 낸 가새골집은 부부와 친구들을 위한 여가 공간으로 변모하려 했다.
은퇴주택과 주말주택, 옆집과의 관계성 차이, 기존 구조의 노후도가 두 채의 시작점을 갈랐다. 은퇴한 부부는 앞으로 30년 이상 거주할 저에너지 단층 목구조 주택을 새로 짓기로 했다. 반면 경제활동이 왕성하고 자녀를 기르는 부부는 리모델링을 통해 기능을 개선하고 건축물의 수명을 연장하기로 했다.

반듯하고 단순한
익히는 근교의 단독주택에 대해 몇 가지 공통된 의견을 지닌다.
첫째, 근교의 작은 집에도 숨을 공간은 필요하다.
둘째, 허락된 여건 하에, 외부 공간과의 접점을 늘리고 외부로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흙 위의 집은 두꺼운 바닥이 필요하다.
출발점은 달랐지만, 두 집 모두 도심에서 떨어진 근교 주택이라는 점에서 몇 가지 공통된 방향을 가졌다. 고당리의 철거한 옛 집 역시 가족의 역사였기에, 고당리 주택은 이전 건물과 비슷한 볼륨과 배치, 입면의 인상을 이어 가고자 했다. 그러나 동시에 30년 이상 아파트에서 살아온 부부에게는 현대화된 내부 공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예산 여건상 기존에 살던 집들보다 작은 집이 될 것이기에, 가능한 요소를 비우고 높은 공간을 누리며 외부로 시선을 보내는 공간을 지향했다.
외부 공간과의 접점을 고려해 정리한 ㄱ자 배치에 기본적으로 경골 목구조를 적용했다. 시선을 가로막는 요소를 줄이고 작은 집에서도 연속적이고 넓은 공간감을 만들기 위해, 거실에서 안방까지 집성목 보(글루램)를 적용하고 그 아래로 빈 지붕 공간을 연속시켰다. 그 아래의 자작합판의 작은 방은 지붕과 떨어져 집 속의 집이 된다. 이 작은 방은 어떠한 구조 노출도 없는 단순한 박스가 된다. 또한 주방과 거실을 하나의 직사각형 평면 안에 연속적으로 배치해, 통합된 큰 공간을 지향했다. 처마 또한 내민 박공지붕을 이용해, 내밀어진 천장면 이외의 요소를 줄여 적극적인 비움을 지향했다. 새로 짓는 일이었지만, 설계는 오히려 비우고 합쳐서 줄여 가는 역설적인 과정이었다.

울퉁불퉁 찌그러진
가새골집은 일종의 티피 텐트와 같은 구조였다. 두 개의 두꺼운 기둥이 솟아 있고 거기서 출발한 서까래들이 외벽을 향해 뻗어 내려가는데, 외벽선은 위치가 자유분방하다. 두 기둥은 축이 조금씩 뒤틀려 있었고, 제재된 방식과 단면의 형상도 서로 달라 일견 기괴한 매력을 뽐낸다. 서까래들은 복잡한 외벽 끝선에 제각기 다른 길이와 각도로 도달한다. 만든 집이라기보다 만들어진 집이라는 인상이 강한 집이었다.
고당리 단독주택과는 달리, 은유적인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과거부터 현재까지 존재하는 물리적 실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가 중요했다. 특히 가운데 두 개의 기둥은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기는 이 집의 정체성이었다. 또한 구조보강을 해야 하지만 그 조치들이 정돈된 하나의 질서 안에 편입하기에 까다로운 상황이었다. 긴 고민 끝에 두 기둥을 각자의 형상을 간직한 공간의 중심으로 삼고, 필요한 보강 역시 감추지 않기로 했다. 기존 부재와 새 부재가 함께 드러나며 집의 시간을 기록하도록 한 것이다.
지붕의 용마루를 받치는 기둥은 추가적인 보강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 형상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상하단부가 그대로 드러나며, 높은 수직 볼륨 안에서 여전히 그 기이함을 물씬 드러냈다. 반면 다른 기둥은 양팔을 뻗은 보와 함께 상부의 서까래를 받쳐야 했기에 보강 신재를 받아들였다. 하부에서는 공간 활용도를 위해 기존 부재와 나란히 덧댔으나, 상단부에서는 자유롭게 사선 부재를 추가하고 형태적 표현을 더 뻗어 부재의 야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진입부에는 열주를 추가해 캐노피를 만들었는데, 기존 구조와 명확히 분리되는 순수한 신설 부분이다. 기존 역사에 덧대어진 부분으로서 향후에도 나중에 지어진 부분임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기존 구조를 최대한 활용하는 리모델링으로 시작했지만, 계획은 결국 무엇을 어떻게 덧대고 채워 집을 강화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으로 정리되었다. 한 집에서는 비움으로 질서를 만들었고, 다른 집에서는 덧댐을 통해 이미 존재하던 질서를 읽어 냈다.
주저하며 결정하는
반듯하고 단순한 질서를 꿈꾸며 계획한 고당리의 신축 주택도 최근 방문해 보니, 의도와는 다른 수많은 덧대기가 늘어 가고 있음을 목격했다. 건축가가 의도한 건축 질서는 그 공간에 몸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풍화되어 가는 듯했다. 이것은 불평이나 자조적 한탄은 아니다. 다만 때로는 반성에 가까운 감정일 수 있다. 매끈하게 다듬은 표면에는 무언가 붙거나 파여 나가며 요철을 만들고, 그 틈이 누적되어 풍성함을 만들어 낸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는 건축이 그 ‘틈’을 조금 더 주도적으로 만들어 가는 일이어야 하는 건 아닐 지 자문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주저한다. 의도된 울퉁불퉁함을 만드는 것은 어딘지 겁이 난다. 자의적 과시가 될까 봐, 모자란 공사 예산을 소진할까 봐, 의미 없는 장식으로 남을까봐 쉽게 손을 얹지 못한다. 뜸을 들이고 수많은 사례를 뒤적이며 방황한다. ‘구태여 반복된 질서 속에 큰 글루램 보를 쓸 것인가?’, ‘출처 불명의 기둥들을 교체하지 않고 둘 것인가?’, ‘새로 추가할 부재는 기존 상황과 어떻게 관계할 것인가?’ 그리고 어느 새벽이든, 깊은 밤이든, 마침내 우리는 결정하고 선을 긋는다. 앞으로의 시간들에 양보하려 다듬고 비우거나, 누군가 이 의도를 이어 가기를 희망하며 덧대고 채워 넣기로 한다. 그 과정은 마감의 표피를 넘어 구조속에서부터 자연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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